프랑스 철학자 장-뤽 낭시는 하이데거와 데리다의 영향을 받으며 존재, 신체, 공동체에 대한 철학적 해체를 시도한 인물이다. 그는 인간 실존을 단독적 주체가 아닌 타자와의 접촉과 공유 속에서 파악하고, 탈근대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이 글은 낭시 철학의 핵심 개념인 '존재의 공유'와 '몸의 의미'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의 단절과 연대 가능성을 조명한다.
해체된 주체에서 공유된 존재로
장-뤽 낭시는 근대철학이 구축해온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주체 개념을 비판하며, 존재는 항상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드러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데리다의 해체 철학을 수용하면서도, 보다 실존적이고 신체적인 차원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낭시는 존재란 어떤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는 만남과 접촉 속에서 발생하는 ‘공유된 사건’이라고 본다. 그는 이것을 “being-in-common” 또는 “partager l’existence”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나라는 주체는 항상 이미 타자와 연결된 채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유는 공동체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넘어, 구성원들이 동일한 규범이나 목적을 갖지 않더라도, 함께 존재함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는 이를 '공동체의 재발명'이라고 부르며, 정치적·사회적 맥락에서 실질적인 연대의 철학적 토대를 제시한다.
몸은 철학적 사건의 장소다
낭시 철학에서 '몸'은 단순한 물질적 외피나 철학적 수단이 아니라, 존재가 드러나는 중심적 장소다. 그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넘어, 몸과 정신의 이분법 자체를 의심한다. 낭시는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든 것이다”라고 말하며, 몸이 주체 이전의 조건이자 타자와의 접촉 지점임을 강조한다. 이로써 몸은 단절된 자아의 틀이 아니라, 관계를 위한 열림의 장이 된다. 낭시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타자와의 피부 접촉, 시선, 목소리, 감각적 교류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경험하게 되며, 이는 곧 존재의 의미를 신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그는 심지어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쓴 『몸의 해석』에서, 생물학적 생존과 철학적 존재가 교차하는 지점을 직접 체험하고 사유한다. 낭시에게 몸은 철학이 다시 출발해야 할 근원이며, 동시에 공동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물리적 기반이다.
공동체는 동일성의 강요가 아닌 차이의 공존이다
현대 사회는 표면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단절과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SNS와 디지털 네트워크는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동시에 고립시키며, 표준화된 가치와 정체성이 다양성을 압도한다. 낭시는 이런 현실에 대해 공동체가 더 이상 동일성과 규범에 기반해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핵심은 ‘같음’이 아니라 ‘다름’의 공존이라고 말하며, 타자성을 수용하는 능력이 곧 공동체의 윤리적 조건임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낭시는 공동체를 닫힌 구조가 아닌 열린 가능성으로 재구성한다. 그의 사유는 국경, 인종, 성별, 신념의 차이를 넘어서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윤리적 토대를 제공하며, 특히 이민과 다양성, 혐오와 포용이라는 주제가 사회 전반을 흔드는 지금, 그 철학적 통찰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공동체는 낭시에게 있어서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생성되어야 하는 ‘열린 관계의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