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존재의 무게를 견디는 법 -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신앙론

by simplelifehub 2025. 8. 25.

키르케고르는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로, 주체적인 인간 존재의 불안과 절망, 그리고 신 앞에서의 믿음을 철학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그는 보편적 이성과 객관성으로는 인간의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오직 개인의 실존적 결단을 통해서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본 글에서는 키르케고르의 절망 개념, 실존의 3단계, 그리고 신앙의 도약을 중심으로 그의 철학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지 살펴본다.

절망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이다

키르케고르 철학에서 절망은 단순한 부정적 감정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자각할 때 발생하는 내면의 갈등을 절망이라고 정의했다. 즉, 인간은 단지 육체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의식적 존재’이기 때문에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인간의 본질을 “자기 자신이 되려는 자기”라고 규정하며, 이 자기 안에는 자신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이 항상 내재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절망은 피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겪는 실존적 조건이다. 절망은 인간이 진정한 자기를 마주하지 못할 때 발생하며, 이는 단순히 우울함이나 좌절과는 다른 깊은 실존적 고통이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이 절망을 통해 인간은 더 깊은 자각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절망을 직면하고, 그 절망의 근원에 다가갈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신과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곳에서 실존적 구원이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심미적, 윤리적, 종교적 - 실존의 세 단계

키르케고르는 인간 실존을 심미적, 윤리적, 종교적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심미적 단계는 쾌락과 감각적 만족, 예술적 정취 속에 삶의 의미를 찾는 시기로, 이 시기의 인간은 책임을 회피하며 순간의 즐거움에 몰입한다. 그러나 이 삶은 필연적으로 권태에 이르게 되며, 자신의 삶이 공허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이 자각이 일어날 때 인간은 윤리적 단계로 진입한다. 윤리적 단계에서는 자신과 타인에게 책임을 지는 도덕적 존재로 거듭나며, 삶을 하나의 과제로 인식한다. 하지만 윤리적 삶 역시 한계에 봉착하게 되며, 인간은 자신의 무력함과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종교적 단계로의 도약을 시도하게 된다. 종교적 단계는 이성이나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신 앞에서의 전적인 항복이며, 신앙이라는 모순적 결단을 요구하는 차원이다. 이는 단순한 교리적 신념이 아니라, 절망을 직면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신과 관계 맺는 행위로 이해된다. 이 도약은 논리나 증거가 아닌,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진정한 실존으로 나아간다.

신앙은 모순을 견디는 용기다

키르케고르는 『공포와 전율』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신앙의 본질을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윤리적 명령과 신의 명령 사이의 모순을 경험하지만, 끝내 믿음으로 이를 감내한다. 키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신앙은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을 견디는 용기이며, ‘부정의 부정’을 넘어서 삶을 긍정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신앙은 도약(leap)이며, 인간은 이 도약을 통해 자기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회복한다. 그는 신앙을 “불가능한 것을 믿는 능력”으로 규정하며, 그 불가능성 속에서 진정한 자유가 태어난다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 신의 개념은 약화되었지만, 그의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존재의 공허함, 도덕적 갈등, 삶의 목적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키르케고르의 절망 구조 속에 존재하며, 그 해결 역시 외부가 아닌 자기 내부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시대를 넘어선 통찰을 제공한다.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는 단지 철학적 이론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비롯된 실천적 요청이며,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용기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