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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이해하는 언어의 틀 -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

by simplelifehub 2025. 8. 25.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은 언어와 삶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 존재와 세계를 새롭게 조망한다. 그는 초기의 논리적 구조에서 벗어나 일상 언어의 사용 방식 속에서 철학적 문제의 본질을 찾으려 했다. 이 글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언어 게임과 규칙 따르기를 통해 어떤 철학적 전환을 시도했는지, 그가 말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는 명제가 어떤 식으로 재해석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그의 언어 철학이 현대 철학, 인문학, 심지어 AI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어떤 파장을 주었는지도 함께 고찰한다.

언어 게임과 의미의 사용 중심적 전환

비트겐슈타인은 초기에는 언어가 세계를 그리는 논리적 그림이라고 보았다. 『논리철학 논고』에서 그는 언어의 구조와 현실의 구조가 일치해야 의미가 성립한다고 주장했지만, 후기 철학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철저히 비판하며 새로운 전환을 시도한다. 그는 언어가 단순히 사물과 개념을 지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현실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언어 게임(language game)'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언어 게임이란 우리가 다양한 상황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규칙과 맥락의 총체를 말한다. 즉, 의미는 단어 자체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쓰이는 방식, 맥락, 규칙 속에서 생겨난다. 예컨대 "책 좀 건네줘"라는 말은 지시라기보다는 행위 요청이며, 그 의미는 일상적 상황과 기대 속에서 성립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혼란의 대부분이 언어의 오용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고, 철학의 임무는 이 혼란을 푸는 것이라고 여겼다. 즉, 철학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쓰이고 있는 언어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삶의 명료함을 회복하는 작업이 된다.

규칙 따르기와 공동체 속의 의미 생성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은 '규칙 따르기(rule-following)' 문제다. 그는 우리가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그 의미가 어떻게 고정되고 유지되는지를 탐구하면서, 규칙은 개인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실천되고 반복되는 행위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한 사람이 "5를 더하라"는 규칙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5, 10, 15, 20, 25..." 대신 "5, 10, 15, 20, 27..."이라고 이어간다면, 우리는 그가 규칙을 ‘따랐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의미와 규칙이 단지 내면적인 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통된 규범과 관습, 교육과 사회적 동의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주장을 통해 언어의 사회적 측면을 부각시켰으며, 의미란 단지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서로에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의미란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활동이며, 언어는 고립된 지시가 아니라 삶의 방식 그 자체다. 이 통찰은 이후 언어철학, 해석학, 사회이론 등에 깊은 영향을 끼치며, 인간의 인식과 소통이 얼마나 공동체적 활동인지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과 철학의 태도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종종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는 초기 철학의 결론처럼 보이지만, 후기에는 다르게 해석된다. 그는 어떤 사물이나 감정, 심지어 존재의 본질을 직접 언어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자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지적한다. 우리가 사랑, 시간, 존재, 자아 같은 개념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논리적으로 정리된 명제의 형태가 아니라 삶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철학의 임무는 우리가 그런 단어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밝히는 것이다. 후기 철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일종의 치료행위로 보았다. 언어의 혼란으로 인해 철학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체하고 원래의 명료한 사용 방식으로 되돌리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침묵하라는 명령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는 포기의 선언이 아니라, 세계와 언어의 경계를 인식하고 그 경계 안에서 명확하게 살아가려는 태도다. 이러한 사유는 오늘날에도 인간 이해, 교육, 심리치료,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천적 의미를 지닌다. 언어는 단지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장이며, 철학은 그 장의 구조를 되짚는 여정임을 그는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