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사회적 형성
테일러는 자아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언어와 문화,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해석적 틀’을 필요로 하며, 이는 사회와 공동체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체성은 개인 내부의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형성되고 재구성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와 문화가 공존하면서, 개인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세속화와 의미 추구
테일러의 『세속 시대』는 종교가 사회 전반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세속화가 단순히 종교의 쇠퇴가 아니라, 다양한 의미 체계가 경쟁하는 다원주의적 상황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전통적 종교적 세계관이 제공했던 확고한 정체성의 기반을 상실하고, 끊임없는 자기 탐색과 선택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한다. 그러나 테일러는 이를 단순한 혼란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자유롭게 삶의 의미를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이해했다.
현대 사회에 주는 함의
테일러의 사상은 현대 다문화 사회와 민주주의적 맥락에서 큰 시사점을 지닌다. 그는 자유를 개인의 자율성에만 국한하지 않고, 공동체적 맥락 속에서 실현되는 가치로 이해했다. 정체성의 위기가 심화되는 오늘날, 그의 철학은 개인이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을 형성하고,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설명해 준다. 또한 세속화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불안을 단순히 부정적인 현상으로 보는 대신, 다양한 가치와 세계관이 공존하는 가운데 새로운 정체성과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테일러의 철학은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 위기를 진단하는 동시에, 더 포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를 향한 철학적 토대를 마련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