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의 삼항 관계
퍼스는 기호를 단순한 표상이나 상징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기호를 ‘기호(sign)·대상(object)·해석자(interpretant)’의 삼항적 관계 속에서 정의했다. 즉, 기호는 대상을 지시할 뿐 아니라, 해석자가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 속에서 의미를 완성한다. 예를 들어, ‘나무’라는 단어는 단순히 대상인 나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화자와 청자가 공유하는 언어적 규칙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기호 과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해석자의 경험과 배경에 따라 끊임없이 확장되고 변형된다. 퍼스의 기호학은 의미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해석의 과정에서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 구조임을 드러낸다.
실용주의와 진리 개념
퍼스의 실용주의는 진리를 단순히 주관적 유용성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는 진리를 탐구와 실험 속에서 점진적으로 확립되는 이상적 상태로 이해했다. 즉, 어떤 명제가 진리인지 아닌지는 즉각적으로 판별되는 것이 아니라, 탐구 공동체가 무한한 대화와 경험 축적을 통해 합의할 때 드러난다. 이는 진리를 절대적 기준으로 보지 않으면서도, 단순한 상대주의로 떨어지지 않게 한다. 진리는 끝없는 탐구의 과정 속에서 점진적으로 확립되는 것이며, 따라서 철학과 과학은 고정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끊임없이 더 나은 설명을 추구해야 한다. 퍼스의 실용주의는 진리를 살아 있는 탐구의 과정으로 재정의함으로써, 철학적 인식론을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영역으로 전환시켰다.
탐구 공동체와 지식의 확장
퍼스가 강조한 또 하나의 핵심은 ‘탐구 공동체’ 개념이다. 그는 지식이 개인의 주관적 경험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대화와 실험 속에서 성장한다고 보았다. 탐구 공동체는 특정한 시대의 학문적, 사회적 규범에 따라 구성되며, 새로운 증거와 논증을 받아들이며 기존의 신념을 수정해 나간다. 이는 현대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과학적 이론은 절대적 진리를 선포하지 않고, 공동체적 검증과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진리에 다가간다. 퍼스의 이러한 관점은 민주적 대화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식이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임을 일깨운다. 결국 그의 기호학과 실용주의는 진리와 의미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해석과 탐구의 결과물로 바라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