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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로티의 실용주의 철학과 진리의 유연한 개념

by simplelifehub 2025. 8. 23.

절대적 토대에 대한 철학적 거부

리처드 로티는 전통 철학이 진리를 영원불변하고 객관적인 것으로 상정해 온 시도를 비판했다. 그는 플라톤에서 시작해 근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이 진리의 ‘토대’를 찾으려 했던 역사를 ‘철학적 토대주의’라 불렀다. 그러나 로티는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철학을 경직시키고 실질적 문제 해결에서 멀어지게 했다고 보았다. 그에게 진리는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공동체 속에서 만들어 가는 실천적 합의다. 따라서 진리를 찾기보다는 사회적 대화 속에서 문제 해결에 유용한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진리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뒤흔드는 급진적인 전환이었다.

실용주의와 진리의 사회적 성격

로티의 철학은 미국의 실용주의 전통, 특히 퍼스와 제임스, 듀이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진리를 사물 자체의 속성으로 이해하지 않고, 공동체 속 담론에서 유용하게 기능하는 개념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과학적 이론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실제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고 공동체가 동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는 절대적 검증이 아니라 지속적 대화와 합의 속에서 형성된다. 이처럼 로티는 진리를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그 과정에서 언어와 담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변화하고 유동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민주주의와 열린 대화의 철학

로티는 진리에 대한 실용주의적 관점을 정치적·윤리적 맥락으로 확장했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해야 할 것은 절대적 원리에 기초한 정치 질서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개방적 장이라고 보았다. 즉, 사회적 합의는 언제든 수정 가능하며, 새로운 담론이 등장하면 기존의 진리 역시 다시 협상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권위적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철학적 무기이자, 다원적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실천적 지혜다. 로티의 철학은 진리의 상대성과 유연성을 강조함으로써 포스트모던 사회에서의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입장이 극단적 회의주의로 흐를 위험도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오늘날 철학이 단순한 이론적 탐구를 넘어 사회적 실천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