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란 무엇인가, 존재자는 누구인가
마르틴 하이데거는 철학의 중심 질문을 ‘존재란 무엇인가’로 다시 돌려놓은 사상가다. 그는 전통 형이상학이 존재에 대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고 지적하며, 그 본래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존재자’를 ‘존재’ 그 자체로 오해하는 오류를 비판하며, 오직 존재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특수한 존재자인 ‘현존재(Dasein)’를 철학의 중심에 놓았다. 현존재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존재의 의미를 묻는 존재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존재자, 즉 인간이 본질적으로 세계-내-존재라는 구조 속에서 사물과 사람, 상황들과 얽혀 있으며, 그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구성은 단선적이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시간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 존재는 항상 미래를 향해 열려 있고, 그 가능성 속에서 자기를 계획하며 살아간다. 이는 인간이 단순히 현재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죽음에 직면함으로써 진정한 자기가 열린다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은 ‘죽음에의 선구적 존재’라는 개념으로 수렴된다. 그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피하지 않고 직시할 때, 비로소 진정한 실존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미뤄두고, 일상적인 타인의 세계 속에서 무기력하게 삶을 흘려보낸다. 하이데거는 이를 ‘비진정성(unauthenticity)’이라 부른다. 반면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죽음을 내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즉 ‘선구적 결단’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과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구성하게 만든다. 죽음은 단지 생물학적 끝이 아니라, 삶 전체를 구조화하는 사건이며, 인간의 모든 선택과 행동을 의미 있게 만드는 배경이다. 하이데거는 죽음이 “자신에 가장 고유한 가능성”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죽음만큼은 타인이 대신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의 것으로 남아 있는 궁극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의 일부로 끌어안고 주체적으로 준비하는 태도는 단순한 철학적 명상이 아닌, 삶을 새롭게 구성하는 실존적 결단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형성하는 존재
하이데거 철학에서 시간은 단지 물리적인 흐름이나 측정 가능한 수치가 아니다. 그는 시간을 ‘존재 방식의 차원’으로 이해했다. 인간 존재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선택, 미래의 가능성을 동시에 끌어안는 시간적 존재이며, 이 시간성 안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가 형성된다. 하이데거는 이를 ‘존재의 시간성’이라 부르며, 특히 ‘미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인간이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규정하는 차원이다. 내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가능성을 열어두느냐에 따라 현재의 나의 모습과 행동이 달라진다.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단지 삶의 끝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끝을 향해 지금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행위다. 현대 사회는 죽음을 말하기를 꺼려하고, 종종 회피하려 든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오히려 죽음을 삶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그것이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드는 계기라고 보았다. 바쁜 일상, 무수한 선택의 교차로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죽음을 하나의 이정표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은 그 죽음을 마주할 수 있게 만드는 사유의 길을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