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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말보다 먼저 온다 — 미셸 푸코와 지식의 숨겨진 계보

by simplelifehub 2025. 8. 21.

우리가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의 구조를 의심하라

미셸 푸코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이며 무엇보다 해체자였다. 그는 우리가 진실로 받아들이는 담론들, 이를테면 정신병의 정의, 성의 의미, 범죄의 기준, 질병의 진단 등은 시대마다 달라졌고, 그것은 단지 인식의 발전 때문이 아니라 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구성된 것이라 주장한다. 『지식의 고고학』과 『말과 사물』을 통해 그는 지식이란 단순히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한다고 보았다. 예컨대, 근대 이전에는 미친 사람을 신성한 존재로 보거나 자연 질서의 일부로 간주했지만, 근대로 들어서면서 이들을 ‘병리적’ 상태로 분류하고 격리하는 제도와 담론이 등장한다. 이처럼 푸코는 특정 시대에 특정한 방식으로 지식이 작동하는 방식을 ‘에피스테메(episteme)’라 불렀고, 이는 진실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허용한 방식으로만 진실이 성립된다는 급진적 통찰을 보여준다.

권력은 억압이 아니라 생산이며, 침묵도 통치의 일부다

푸코는 권력을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작동하는 억압적인 구조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권력이 말을 제한하거나 억누르는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말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생산적 힘이라고 본다. 『감시와 처벌』에서 그는 범죄를 다루는 법률체계가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범죄인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분류하는 수많은 ‘지식’들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정신병에 대한 정신의학의 담론, 성에 대한 교육과 심리학적 구분들, 건강에 대한 보건 시스템의 기준 역시 모두 사람들을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한 권력-지식의 산물이다. 침묵조차도 권력의 도구가 된다. 무엇이 말해질 수 있고, 무엇은 금기시되는가는 모두 권력이 규정한 질서에 따라 구성된다. 우리는 때로는 말로, 때로는 침묵으로, 어느 방향으로든 권력의 흐름에 참여하게 된다.

현대 사회의 규율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처럼 작동한다

근대 사회는 더 이상 채찍이나 고문으로만 사람을 통제하지 않는다. 푸코는 이 점을 『감시와 처벌』에서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을 통해 예리하게 분석한다. 벤담이 고안한 판옵티콘은 감시자가 수감자들을 모두 볼 수 있는 구조지만, 수감자는 감시자가 자신을 실제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구조는 감시받는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자율적인 규율을 유도한다. 푸코는 이 원리가 감옥뿐 아니라 학교, 병원, 군대, 회사 등 사회 전반에 내면화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매뉴얼과 매커니즘, 평점과 서열, 통계와 기준에 의해 끊임없이 측정되고 평가되며, 스스로를 규율하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규율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믿는 동시에, 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정해진 기준을 자발적으로 따르는 존재가 된다. 푸코가 경고한 것은 바로 이런 ‘자유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통제’의 위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