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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상황에서 드러나는 실존 – 야스퍼스의 실존철학

by simplelifehub 2025. 8. 20.

실존은 객관적 정의가 아니라 주관적 각성이다

야스퍼스는 실존을 단순히 철학적 개념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그는 실존을 '내가 나 자신이 되려는 노력 속에서 경험되는 존재방식'으로 규정했으며, 이는 사물이나 대상처럼 객관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세계 내 존재로서 여러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지만, 이러한 ‘존재방식’만으로는 자신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 오직 실존적인 각성, 즉 ‘나’라는 존재가 자신의 유한성과 본질적 불안정함을 직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실존의 가능성에 눈뜨게 된다. 이때 실존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자신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며 선택의 연속이다. 야스퍼스는 실존을 '표현'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인간이 삶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책임지며 형성해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존은 자기 초월의 운동이며, 물리적 존재 너머에서 의미를 창출하려는 존재의 방식이다.

한계상황은 실존을 드러내는 촉발점이다

야스퍼스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는 ‘한계상황(Grenzsituation)’이다. 그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극한적 상황들, 예컨대 죽음, 고통, 투쟁, 죄의식 등을 한계상황이라 정의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회피할 수 없으며, 인생의 계획이나 기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들은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유한하고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야스퍼스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자신의 실존에 눈뜨게 된다고 본다. 즉, 삶의 위기 속에서만 인간은 자신의 본질과 마주하며,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묻게 된다. 한계상황은 인간을 깨우는 철학적 순간이며, 실존적 자각을 유도하는 계기이다. 따라서 야스퍼스에게 철학이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삶 속의 위기와 불안으로부터 비롯되는 존재론적 물음이자, 각성의 기술이다.

소통을 통한 초월 – 실존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완성된다

야스퍼스에게 실존은 고립된 주체의 상태가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속에서 성립된다. 그는 참된 실존은 '포괄자의 의식' 속에서 타자를 향한 열린 태도와 대화를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포괄자’는 단순한 신이나 존재의 총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실존이 지향하는 궁극적 초월의 개념이다. 인간은 한계상황에서 자신이 존재로서 던져졌음을 자각하고, 그 고통과 질문 속에서 초월을 지향한다. 이때 타자와의 소통은 실존이 자기 폐쇄성에서 벗어나, 더 깊은 자기 이해에 이르는 통로가 된다. 즉, 진정한 실존은 타자의 실존을 인정하고, 함께 존재하며 대화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은 개인주의적 실존이 아니라, 상호주관적 관계 속에서 성숙하는 실존을 지향하며, 이는 곧 실존적 자유와 책임의 윤리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