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하나의 진리가 통하지 않는 사회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현대 사회를 ‘거대서사의 종언’으로 규정했다. 여기서 거대서사란 계몽주의, 기독교 구원론, 마르크스주의처럼 인류 전체를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 보편적 이야기이다. 그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거대서사가 설득력을 잃고, 개인과 공동체는 각자의 작은 이야기, 곧 ‘소서사(metanarrative)’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는 단지 문학이나 예술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생산과 정당화 방식 전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더 이상 우리는 단일한 기준이나 권위에 기대어 의미를 구성할 수 없으며, 대신 다양한 담론들이 병존하는 불안정한 상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 사회를 다원성과 상대성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진단했다.
지식은 권력의 도구가 아닌 놀이의 장이 된다
리오타르는 과학과 기술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지식 또한 경제적 가치에 따라 평가된다고 보았다. 그는 근대에서 지식은 진리를 밝히고 사회를 진보시키는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지식조차 시장의 논리에 종속되고, 유용성과 효율성에 따라 선택된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그는 지식이 더 이상 단일한 체계 안에서 위계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주장하며, 게임의 규칙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 게임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언어 게임’은 각각의 담론이 따르는 규칙과 맥락을 뜻하며, 우리는 하나의 규칙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리오타르는 다양한 지식, 표현, 정체성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윤리적 감수성을 강조하며,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 태도라고 본다.
포스트모던 윤리는 다름을 인정하는 감수성이다
리오타르는 단순히 거대서사를 해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체 이후에 등장하는 다원성의 윤리를 고민했다. 그는 모든 주장이 동등하다는 무비판적 상대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타자의 목소리가 억압되지 않도록 하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윤리의 핵심으로 삼았다. 포스트모던 윤리는 자신과 다른 존재, 다른 언어, 다른 삶의 방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억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는 말할 수 없는 것,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열림’의 윤리이며, 이질성과 다름을 포용하려는 노력이다. 리오타르는 우리가 진리라는 이름으로 타자를 침묵시켜 온 역사를 비판하며, 이제는 다양성과 불확실성 자체를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닌, 오늘날 민주주의, 정체성, 문화적 충돌 문제를 성찰하는 데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