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은 억압을 감추는 도구가 되었다
아도르노는 20세기 중반 자본주의 사회에서 급속히 확산된 대중문화를 ‘문화산업(culture industry)’이라는 개념으로 비판했다. 그는 영화, 라디오, 팝음악 등 대중매체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라고 보았다. 특히 문화산업은 대중의 사고를 단순화하고, 비판 능력을 마비시키며, 획일화된 가치와 욕망을 유포함으로써 인간을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시킨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오락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억압의 메커니즘을 은폐하고 일상의 불만을 무해한 형태로 방출하게 만드는 체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문화산업은 인간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신, 반복과 공식화, 표준화된 감정의 재생산을 통해 ‘생각하지 않는 존재’를 길러낸다.
예술의 자율성과 산업화의 긴장
아도르노는 진정한 예술이 인간의 고통, 모순, 부조리를 드러내고 이를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문화산업은 예술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며, 그 자율성을 파괴한다. 이는 단순히 ‘대중예술은 저급하고 순수예술은 고급스럽다’는 식의 위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예술이 산업적 생산 방식에 편입될 때,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체제에 봉사하게 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음악은 감정을 조작하는 배경음악이 되고, 영화는 예측 가능한 플롯으로 감정 소비만을 유도하며, 문학은 독립적 사고가 아닌 위로와 도피를 제공하는 콘텐츠로 변질된다. 이로써 예술은 고유한 저항성과 해방의 가능성을 상실하고, 단지 자본주의의 또 다른 상품이 되어버린다. 아도르노는 이를 통해 진정한 문화의 위기를 경고하고, 예술이 다시금 인간의 삶에 질문을 던지는 장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비판적 사유의 회복을 위하여
아도르노의 문화산업 비판은 단지 과거의 라디오나 헐리우드 영화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넷플릭스, 유튜브, SNS 플랫폼은 더욱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 취향을 분석하고,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비슷한 유형의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질문하거나 의심할 틈 없이 소비의 루틴에 몰입하게 된다. 아도르노가 우려한 ‘사고의 마비’는 디지털 시대에도 유효하다. 그는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오락과 상품 소비를 넘어서, 자신과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문화는 단순한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를 성찰하고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아도르노의 철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문화를 소비하는가, 아니면 그 안에서 사유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