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을 넘어선 윤리의 철학
레비나스는 서양 철학의 오랜 전통이 존재를 중심으로 사유해왔다는 점에서 비판의 시선을 던진다. 플라톤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존재란 무엇인가’를 탐구했으며, 인간과 세계를 존재론적 범주로 파악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이러한 존재 중심의 사유가 타자와의 관계, 곧 윤리적 차원을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그에게 철학은 존재보다 윤리가 먼저다. 즉, 나는 세계에 앞서 타자와 마주하며, 그 마주침에서 이미 윤리적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이는 존재에 대한 이해보다도 먼저, ‘타자의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된다는 의미이며, 레비나스는 이를 통해 철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얼굴의 현현과 윤리적 요청
레비나스 철학의 핵심 개념은 바로 ‘얼굴(face)’이다. 여기서 얼굴은 단순한 육체적 외형이 아니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타자의 고유한 현존을 의미한다. 나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그를 ‘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며, 그 순간 타자는 나에게 말 없이 명령한다. “나를 죽이지 말라.” 이 명령은 법률이나 계약 이전에 나를 향한 무조건적이고 선험적인 요청이다. 레비나스는 이처럼 얼굴의 현현이야말로 윤리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타자의 얼굴은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억압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자유로운 존재로서 타자에게 응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근원적인 장이다. 나의 책임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주어진 존재 방식이다.
무한성과 타자에 대한 책임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를 ‘무한성’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타자는 결코 나에게 완전히 포착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로 인해 나는 끊임없이 그에게 책임을 느낀다. 이러한 책임은 대등한 계약이나 상호성의 윤리를 넘어서,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이며, 때로는 과도해 보이기까지 한다. 레비나스에게 윤리란 타자에게 나의 자리를 내어주고, 그의 고통과 요구에 끝없이 응답하려는 자세이다. 그는 특히 ‘고아, 과부, 이방인’과 같은 가장 취약한 타자에게 주목하며, 철학이란 바로 이러한 존재들에게 귀 기울이는 실천이라고 본다. 오늘날 혐오와 배제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레비나스의 철학은 우리가 윤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 인식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윤리적으로 전환하는 사건이다. 그의 사유는 철학이 삶의 가장 민감한 지점에서 시작해야 함을 보여주는 윤리적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