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명제로 여성 존재의 사회적 구성성을 폭로한다. 그녀는 여성이 역사적으로 남성에 의해 ‘타자’로 위치 지어졌으며, 남성은 스스로를 보편적 ‘주체’로 간주한 반면, 여성은 그 주체성의 반사적인 존재로 설정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선택하기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동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보부아르는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은 본질에 의해 규정되지 않으며, 존재는 언제나 자율적 결단과 실천 속에서 형성된다고 본다. 여성이 진정한 실존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어진 타자성의 지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능동적 사유와 행동이 필요하다.
타자화의 과정과 남성 중심성의 구조
보부아르는 여성이 어떻게 ‘타자’로 만들어졌는지를 역사적, 문학적, 철학적 자료를 통해 분석한다. 그녀는 남성이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규정하면서, 여성은 그 기준에 의해 파생된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고 본다. 이는 단지 사회적 관습이나 법률의 문제를 넘어서, 존재론적이며 인식론적인 문제다. 여성은 자신의 경험과 세계를 주체적으로 언어화하기보다는, 남성이 만들어놓은 담론 안에서 이해되고 규정되어 왔다. 이러한 타자화는 여성 스스로가 내면화함으로써 더욱 공고해지고,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데 장애가 된다. 보부아르는 여성 해방이 단지 제도적 평등으로만 가능하지 않으며, 여성 스스로 주체로 살아가겠다는 실존적 결단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유의 실천과 새로운 실존의 가능성
실존주의에 기반한 보부아르의 여성 철학은 자유의 실천 가능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 자유가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성의 삶이 진정으로 해방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정치적, 교육적 기회의 확대는 물론, 내면의 주체화가 필수적이다. 그녀는 여성들이 자신을 객관화하는 시선을 넘어, 세계와 능동적으로 관계 맺고, 타자적 지위를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실존의 길을 열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단순한 성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에 대한 성찰이며, 철학이 현실 세계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적 모범이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며, 여전히 유효한 철학적 자극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