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더 이상 동일성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서양 철학의 전통은 오랫동안 동일성(identity)을 중심으로 사고를 전개해왔다.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같음’을 기준으로 진리를 판단하고, ‘차이’는 그것의 결핍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이 전통적 구조를 전면적으로 뒤집는다. 그는 동일성은 사유의 출발점이 아니라 사유의 결과이며, 진정한 창조적 사고는 동일성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생성해내는 데서 출발한다고 주장한다. 들뢰즈에게 철학은 더 이상 고정된 개념들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작업이 아니라, 사유 자체를 변형하고 확장하는 생성의 실천이 되어야 한다. 이로써 그는 철학을 정태적인 체계에서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흐름의 장으로 이동시킨다.
반복은 단순한 복제가 아닌 생성의 운동이다
들뢰즈의 철학에서 ‘반복’은 단순히 동일한 것을 다시 나타내는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다. 그는 반복을 통해 새로운 차이가 창출되며, 반복은 언제나 같은 것 속에서 다른 것을 발생시키는 생성의 운동이라고 본다. 이는 음악, 문학, 삶의 경험 속에서도 확인되는 개념이다.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더라도, 그것은 시간과 맥락 속에서 언제나 다르게 울린다. 반복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 매번 달라지는 차이의 구현이며, 그 자체로 창조적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반복을 통해 존재와 사고가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고 ‘출현’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복은 사유의 틀을 깨뜨리는 힘이며, 주체가 세계와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구성하게 만든다.
차이는 중심이 아니라 배경에서 솟아오른다
들뢰즈는 철학이 배제하거나 주변화해온 ‘차이’를 철학적 중심으로 되돌린다. 그는 ‘차이는 반복된다’는 명제를 통해, 존재의 본질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 그 자체의 반복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차이는 개념화되기 전에 존재하며, 언어로 포착되기 이전의 미분적인 상태로서, 끊임없이 의미를 생성해내는 원천이다. 들뢰즈에게 중요한 것은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의미가 생겨나는 과정이며, 철학은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예술, 정치, 윤리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들뢰즈는 철학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차이를 사유하고,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창출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써 그는 철학을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실천적 사유로 전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