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해석자의 선이해 위에서 형성된다
가다머는 인간의 이해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인 인식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우리가 어떤 텍스트나 타인을 이해할 때, 우리는 이미 일정한 관점과 배경지식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선이해(Vorverständnis)’라 부른다. 이 선이해는 우리의 문화, 역사, 언어, 개인적 경험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이해는 항상 해석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순수한 빈 캔버스 상태로 세계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특정한 ‘지평(horizon)’을 가진 존재로서, 다른 지평과 부딪히고 융합하면서 의미를 구성한다. 이 과정을 가다머는 ‘지평의 융합(Fusion der Horizonte)’이라 부르며, 이해란 낯선 것과 익숙한 것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적 해석임을 강조한다.
언어는 이해의 매개이자 인간 존재의 기반이다
가다머는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조건으로 본다. 그는 인간은 언어 속에 살며, 모든 이해와 해석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어떤 텍스트를 읽거나 타인과 대화할 때, 우리는 단지 정보를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언어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자신의 지평을 확장하게 된다. 가다머는 언어가 가진 이 자기 초월적 능력을 통해 인간은 자기 경험을 넘어선 타자와 만날 수 있으며, 이 만남이야말로 해석학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언어는 단지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존재를 구성하는 장이며, 이 언어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더 넓은 세계와의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철학은 끊임없는 대화이며 열린 이해의 과정이다
가다머에게 철학은 완결된 체계를 세우는 작업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과 응답의 과정, 곧 ‘대화’다. 그는 진정한 이해는 언제나 자신과 타자의 입장을 조율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우리는 점차 더 깊은 의미에 도달한다고 본다. 이러한 해석학적 대화는 고정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의미를 구성하는 창조적 행위다. 그는 특히 예술 작품, 역사적 문헌, 타자의 말 등에 대한 이해에서 이러한 대화적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다머의 해석학은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진리란 절대적 규범이 아닌, 대화 속에서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로써 그는 이해와 진리, 언어와 존재,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조명했으며, 현대 철학에 대화와 해석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