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하이데거는 20세기 독일 철학의 중심 인물 중 하나로,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은 실존주의, 해석학, 현상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평가된다. 하이데거는 서양 형이상학 전통이 ‘존재자’에만 주목하면서 정작 ‘존재’ 그 자체의 의미를 잊어버렸다고 비판하며, 철학의 본령은 존재를 다시 묻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인간을 ‘현존재(Dasein)’라 명명하며, 그 존재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존재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세계 속에서 ‘내던져진 존재’이며,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자기 이해를 통해 진정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일상적 삶에서 인간이 존재의 의미를 망각한 채 도구적, 기능적 세계 속에 파묻혀 살아간다고 비판했으며, 존재의 진리를 회복하기 위해선 ‘불안’과 ‘죽음의 자각’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철학은 단순한 실존 분석을 넘어 존재론적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인간이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해석하게 만든 근본 사유로 자리 잡았다.
현존재란 무엇이며 왜 특별한 존재인가
하이데거는 인간을 단순히 이성적 동물이나 사고하는 주체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존재의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곧 ‘현존재(Dasein)’로 정의했다. 현존재는 자기 존재를 문제 삼는 존재이며, 세계 속에서 항상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드러내고 해석하는 존재다. 그는 인간이 단순히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라는 구조 속에서 항상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때 세계는 단지 사물의 총합이 아니라, 의미와 사용, 관심이 얽혀 있는 실존적 지평이다. 현존재는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구성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일상성 속에서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따라 ‘그들(das Man)’에 묻혀 살아가며, 자신에게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외면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일상적 익명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안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계기를 강조하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본래 자신의 존재에 눈뜨게 만드는 순간이라고 보았다.
존재 망각과 도구화된 세계에 대한 비판
하이데거 철학의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서양 문명이 존재 자체를 망각하고, 존재자만을 대상으로 삼아왔다는 점이다. 그는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이 인간을 ‘주체’로, 세계를 ‘객체’로 구분하며, 존재를 지식이나 조작의 대상으로 환원시켰다고 보았다. 특히 근대 과학과 기술 문명은 세계를 ‘자원’으로, 인간을 ‘생산 요소’로 전락시켰으며,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기보다 은폐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이데거는 이를 ‘기술적 사유’라 부르며, 인간이 존재자들을 효율성, 통제 가능성, 생산성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는 방식이 결국 인간 자신도 도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러한 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은 존재를 ‘현현(알레테이아)’이 아닌 ‘저장소’나 ‘시스템’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존재와의 본래적인 관계를 단절시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존재 망각은 단지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삶을 기계적 절차나 성과로만 판단하게 만드는 근본 위기라는 점에서 실존적 사안으로 연결된다. 하이데거는 철학의 역할이 존재를 다시 드러내는 것, 즉 존재의 빛을 다시 회복하는 작업이라고 보았다.
죽음의 자각과 진정한 존재로의 전환
하이데거 철학에서 ‘죽음’은 단지 생물학적 종말이 아니라, 인간 존재 구조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회피하거나 망각할 때, 일상의 흐름 속에 매몰되어 ‘비진정성(Unauthenticity)’의 상태에 머물게 된다고 보았다. 반대로,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실존을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존재(authentische Existenz)’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하였다. 죽음의 자각은 인간에게 ‘지금 여기’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마주하게 만들며,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들을 선택하고 결단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단지 철학적 성찰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이를 ‘결단적 존재’라고 표현하였으며, 자기 삶의 고유성과 한계, 그리고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존재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실존의 형태라고 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사유는 죽음을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문화 속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며, 인간이 자기 삶을 타자화된 질서에서 회복하고, 존재 자체의 물음을 다시 던질 수 있게 하는 철학적 기초가 된다. 하이데거는 결국 존재 철학을 통해 인간에게 진정한 자기 이해와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라는 강력한 사유의 요구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