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본질을 찾는 작업이 아니라 언어의 재구성이다
로티는 전통적인 철학이 진리, 본질, 보편성을 찾으려 했던 모든 시도를 비판한다. 그는 플라톤 이래의 철학이 ‘거울에 비친 자연’처럼 세계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언어와 개념을 찾으려 했다고 보았고, 이를 '표상주의'라 부른다. 그러나 그는 언어가 세계를 직접 반영한다는 생각 자체가 오류이며, 우리가 가진 모든 개념과 진리는 언어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즉, 진리는 어떤 절대적 기준에 의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그 언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은 더 이상 실재를 파악하려는 이론적 작업이 아니라, 언어와 담론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고 새로운 사회적 가능성을 여는 실천이 되어야 한다. 로티는 철학자를 ‘문제 해결자’나 ‘진리의 탐구자’가 아닌 ‘시적 창조자’로 보며, 철학이 문학, 정치, 문화와 교차하는 영역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진리는 공동체의 합의 속에서 생겨난다
로티는 진리를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진리를 ‘우리 사회에서 지금은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이는 특정한 공동체와 시기의 합의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입장은 상대주의처럼 보이지만, 그는 단순한 "무엇이든 다 옳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더 나은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과학, 도덕, 예술 등 모든 지식은 폐쇄된 체계가 아니라 열려 있는 대화의 장 안에서 형성되며, 이런 점에서 철학은 근거를 찾는 작업이 아니라, 더 넓은 공감과 연대를 형성하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그는 특히 ‘아이러니스트’라는 개념을 통해, 자기 신념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더 나은 대화를 모색하는 태도를 제안한다.
철학은 연대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로티의 실용주의 철학은 진리보다 연대(solidarity)에 가치를 둔다. 그는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이 철학의 중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철학적 태도를 ‘자유주의적 아이러니스트’라고 부르며, 이는 자기 확신보다는 공감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윤리적 태도를 말한다. 로티는 전통적인 보편 윤리 대신, 구체적인 이야기와 공감의 힘을 통해 연대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철학은 완벽한 체계나 이론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담론적 실천이며, 그는 이를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간 해방에 기여하고자 했다. 결국 로티는 철학을 특권적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고 대화하는 열린 장으로 탈중심화하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