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시간과 질적 시간은 다르다
베르그송은 당시 과학과 철학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양적 시간’, 즉 시계로 측정되는 균질한 시간 개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은 정량적이며 외부 세계의 변화 속도를 측정하기 위한 기준이지만, 인간이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그는 주장했다. 예컨대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이처럼 인간이 체험하는 시간은 균질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감정과 의식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그는 이러한 시간을 '지속(durée)'이라 불렀고, 이는 양적인 분할이 불가능하며 오직 의식 속에서 질적으로 체험되는 흐름이라고 정의했다. 지속은 과거, 현재, 미래가 명확히 분리되지 않고 상호 침투하는 유기적 흐름이다.
직관은 지성을 넘어 삶을 포착한다
베르그송은 우리가 지속을 이해하기 위해선 일반적인 지성이나 분석적 사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지성은 세계를 분할하고 고정된 개념으로 파악하려 하지만, 지속은 본질적으로 흐르고 변화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틀에 갇히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지속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직관(intuition)’을 강조했다. 직관은 감각이나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 살아 있는 체험의 직접적 인식이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각각의 음을 따로따로 계산하지 않듯, 시간의 흐름도 전체적인 리듬과 정서를 통해 직관적으로 느낀다. 베르그송에게 직관은 단순한 감정이나 본능이 아니라, 삶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더 깊은 인식 능력이었다. 이는 예술, 창조, 사랑 같은 경험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그는 철학이 삶과 괴리된 분석에만 머무르지 않고, 살아 있는 흐름 자체를 체험하고 포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는 지속 속에서만 가능하다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은 자유의지 논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는 인간의 자유가 존재하려면, 우리의 행위가 외적 원인에 의해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는 독창적인 결정이어야 한다고 본다. 물리학적으로 설명되는 세계에서는 인과관계가 지배하지만, 의식 속의 지속은 단선적인 인과가 아닌, 복합적인 정서와 기억, 의지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자유로운 결정은 과거의 모든 경험과 감정이 응축된 현재의 순간에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선택되는 창조적 행위다. 이것은 기계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고유한 삶의 리듬과 연결된 결과다.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 자유란 지속과 직관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진정한 자유는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창조적 과정이라고 보았다. 베르그송의 이 철학은 인간 존재를 기계적 설명이 아닌, 살아 있는 흐름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