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서사는 더 이상 우리를 설득하지 못한다
리오타르는 산업화와 계몽주의 이후 서구 문명이 공유해온 ‘거대서사(grand narrative)’들이 더 이상 그 정당성과 설득력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 거대서사란 역사가 반드시 진보한다는 믿음, 과학이 진리를 밝혀낼 것이라는 기대,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해방, 계몽주의의 이성 중심주의 등이 포함된다. 리오타르는 이러한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이야기들이 개인의 경험과 다양한 문화적 맥락을 억압하고 지워버렸다고 지적하며, 현대 사회는 오히려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소서사(petit récit)’—의 다원성이 공존하는 조건 속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전환이 단지 문화나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 생산과 정치, 과학의 정당성 기반이 전복되고 있는 심대한 철학적 전환임을 강조한다.
지식은 더 이상 보편적 진리를 향하지 않는다
리오타르는 현대 사회에서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고 유통되는지를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분석한다. 그는 과거와 달리 현대의 지식은 ‘정당화’나 ‘진리’의 이름으로 생산되지 않고, ‘성과’와 ‘유용성’의 기준에 따라 관리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컴퓨터화와 디지털화가 진전된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식조차도 생산과 통제, 효율성의 메커니즘에 편입된다. 대학, 연구소, 출판 시스템 등은 점점 더 시장 논리에 의존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지식의 자유로운 생산과 교환은 제한되며, 이질적인 담론은 쉽게 배제된다. 리오타르는 이러한 지식의 상품화가 인간의 사유를 위협한다고 보며, 포스트모던 철학이 이러한 위기에 맞서 다원성과 차이, 소수의 목소리를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의는 단일한 규칙이 아닌, 갈등의 틈에서 발생한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의 정의를 위해 ‘차이의 윤리’를 제안한다. 그는 모든 담론이 동일한 규칙과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폭력적일 수 있다고 본다. 서로 다른 언어 게임(language game)이 존재하고, 각기 다른 규칙과 맥락에서 작동하는 이 담론들은 단일한 기준으로 비교되거나 평가될 수 없다. 리오타르는 우리가 서로 다른 규칙을 지닌 담론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 불가능성’을 인정해야 하며, 이 틈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충돌이야말로 진정한 정의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관용이나 타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성을 수용하는 급진적 윤리의 요청이다. 결국 그는 철학이 통일성과 보편성을 추구하기보다, 해체되고 분열된 현실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오늘날 다문화 사회, 정체성 정치, 기술문명의 도래 속에서 여전히 유효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진다.